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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의 ‘돌봄 커먼즈’의 위기와 해법

 

백 영 경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코로나19와 뉴딜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1년이 넘었다. 하루에도 수만 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비교하면 크지 않은 규모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새해 들어 누적 확진자 수는 7만 5천명을 넘었고 사망자 수 역시 1천명을 넘어선지 오래이다. 2월 말이면 백신 접종이 시작되리라는 소식이 들리면서 사태 종식의 희망이 어느 정도 보이는 것 같다고는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뿐 아니라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코로나19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않았으나 올 겨울에도 조류독감과 돼지열병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강추위와 폭설은 감염병 위기 뒤에 존재하고 있는 더 큰 기후위기의 존재를 일깨운다. 그러니 다른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현재 당면한 위기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닥쳐오는 변화에 단순히 적응하는 것을 넘어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각 정당이 앞 다투어 기후위기에 따른 생태계 파괴와 사회경제적 위기의 동시해결을 목표로 한다는 ‘그린뉴딜’ 정책을 내놓은 것도 이 같은 분위기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7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를 열고 “한국판 뉴딜은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대전환’ 선언”이라고 밝히면서,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탄소의존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불평등사회에서 포용사회로”의 변화를 약속했다. 소위 ‘ K-방역’의 성공을 발판 삼아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대전환을 이루어내겠다는 비전을 선포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모두 이런 새판짜기 계획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을 보면, 실제로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미리 의도된 것은 아니더라도, 코로나19 이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던 정책이 실시되고, 근본적인 변화를 논의하는 장이 열렸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우여곡절 끝에 전국민에게 지급된 재난지원금은 가구별 지급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이 실현 가능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 대공황기의 전면적인 사회경제적 개입정책에서 유래한 뉴딜(New Deal)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사회주체들 간의 새로운 사회계약 혹은 ‘새판 짜기’를 의미한다.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을 결합한다는 ‘한국판 뉴딜’ 역시 코로나19 위기가 역설적으로 촛불혁명 이후 한국사회의 개혁을 진전시키고 새로운 판을 짤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연이어 닥치는 재난을 감당하기도 만만치 않은 마당에 제대로 된 새판 짜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점을 감안해도, 현재로서는 한국판 뉴딜이 기후위기가 촉구하는 삶의 근본적인 대전환으로 이어질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한국판 뉴딜에 대한 거센 비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방역 성공을 발판으로 삼아 코로나19로 제기된 사회적 과제들을 풀어가겠다고 천명했음에도, 돌봄 위기에 대해서는 제대로 응답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국사회는 낮은 출생률에서 드러나듯이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심각한 사회재생산 위기를 겪고 있었거니와 그 핵심은 돌봄의 위기였다. 감염병 확산 우려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른 사회적 돌봄의 실종은 가뜩이나 취약한 돌봄체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새판짜기와 돌봄의 과제




페미니스트들은 돌봄의 책임이 가족 구성원, 그 가운데서도 여성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돌봄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예년에 비해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줄어들었지만, 이는 학대와 폭력이 줄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드러낼 기회마저 적어졌기 때문이며 현장에서 체감하기로는 위험에 처한 이들이 늘었다는 보고도 나왔다. 예컨대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인 교사 등이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면서 상황을 살피기 어려워진 것이다. 가정 내에서 아동을 돌보기 어려운 경우 긴급 돌봄이 제공되었다고는 하나, 정부가 취한 유연근무제 및 가족돌봄휴가 지원 정책은 기본적으로 돌봄의 책임을 가족에게만 지우는 경향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온라인 수업과 등교수업의 병행 속에서 혼자 있는 초등학생의 수가 두배로 늘었고, 이러한 돌봄의 공백이 학습 격차를 비롯한 여러 문제를 발생시키는 현실 은 여성들의 경제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왔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여성고용률은 남성에 비해 훨씬 더 큰 폭으로 하락했고, 여성 비경제활동 비율은 더 급격하게 증가했다. 특히 20대 여성이 코로나19로 인한 불황으로 고용시장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20대 여성의 취업자 수 감소폭은 6년 6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존 20대 취업자 수 중 실업 증가폭이 가장 큰 업종은 서비스업으로, 매달 약 10만명을 기록했던 서비스업 취업자 증가폭이 지난달 1만 4,000명으로 급감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을 통해 매출을 내던 관광업계는 타격이 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2020년 9월 여성고용 동향에 따르면 여성 취업자 수는 1,158만 2,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186만 5,000명) 대비 2.4%(28만 3,000명) 줄었다. 남성 취업자 수가 같은 기간 0.7%(10만 9,000명)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감소폭이 3배 이상이다. 9월 여성 실업률은 3.4%로 전년 같은 달에 비해 0.6% 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남성 실업률은 3.7%로 전년 동월 대비 0.3% 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여성 실업률은 20대가 7.6%로 가장 높았고, 15~19세 4.6%, 30대 3.6%, 60~64세 3.1%, 40대 2.5%, 50대 2.4%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조가 공동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1명이 코로나19로 인해 실직을 경험했다. 이러한 여성노동 고용지표 악화에 대한 대책으로 성별화된 이중 노동시장 구조 개선 및 노동시장 성별 격차를 해소도 이야기되지만, 특히 코로나19 국면에서 중요하게 지적이 되고 있는 것은 코로나로 인해 여성에게 더 부과된 돌봄·육아 부담을 해소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적 돌봄의 공백이 여성들을 가정으로 소환하게 되고,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대면노동을 지속해야 하는 어려움이나 불안정한 일자리의 문제가 여성들을 위협하면서 다시 돌봄의 공백을 키우는 문제는 지난 11월 초 돌봄전담사 파업이 잘 보여준다. 돌봄 운영 주체를 교육청에서 지방자치단체로 넘기는 ‘온종일 돌봄체계 운영·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에 반대하는 파업의 참가자들은 특별법안이 통과되면 돌봄이 민간위탁 형태로 민영화되면서 비용 절감을 위한 민영화가 돌봄 서비스 질을 떨어뜨리고 공공성도 약화시킬 것이라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들은 실제 근무시간을 반영하지 못하는 시간제 계약이 공짜노동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돌봄 공백의 확대로 인한 고용 조건의 악화가 이들 여성노동자들을 파업으로 내몰았지만, 동시에 불안한 돌봄 체계 속에서 고통 받는 다른 (주로) 여성노동자들이 생겨난 셈이다. 이는 그저 하나의 사례일 뿐, 앞서 말한 사례 이후에도 발달장애인들의 어려움이 전국에서 보고되고 있고, 당장 줄어든 수업일수나 확진자 발생시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등교중단 사태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가정들의 문제가 있다. 또한 요양병원에 모신 노인들과는 면회가 중지되어서 겪는 문제, 가정에 계신 환자나 노약자의 경우 더욱 조심스러워진 돌봄의 어려움 등 코로나19에 따른 돌봄의 문제는 그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고, 돌봄이라는 것이 각 개인들의 필요에 따라 매우 다양한 양태를 띠듯이 실제로 노숙자와 장애인 등 이미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고 있던 사람들이 경험하는 문제라고 해서 어떤 특정한 하나의 지원으로 해결될 수 있는 간단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띠기도 한다. 



  현실 세계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시민들의 일상에서 돌봄의 위기는 감염의 공포만큼이나 직접적인 재난 경험이었기에 코로나19 이후의 사회를 상상하는 데 있어서도 이 문제가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언택트’가 새로운 ‘노멀’이며 디지털 기술이 감염병 위기의 해결책이기 때문에 새판 짜기에서도 이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주류적 시각은 돌봄 재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돌봄을 중심으로 하는 전환을 주장한다고 해서 돌봄노동이 공식 경제체제로 편입되어 다른 노동과 동등한 시장가치로 인정받기를 목표로 하지는 않으며, 기존의 성장지상주의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작동할 수 있도록 돌봄을 통해 보조하겠다는 뜻도 아니다. 물론 돌봄노동에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시장에서도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의 사회를 상상함에 있어서 돌봄이 중심이 된다는 것은 단지 기존 체제 내에서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과는 다르다. 서로 의존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바라보는 돌봄 중심의 시각은 그 자체로 성장과 이윤을 지상목표로 삼는 체제와는 양립하기 어렵다. 따라서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이란 성장 자체에서 탈피하자는 주장이며, 어떤 새판을 짤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돌봄 민주주의와 돌봄 뉴딜을 넘어서 돌봄커먼즈

 



 코로나19 이후 한국에서 부상하는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 논의는 이제까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돌봄과 재생산 노동에 대한 재평가 없이는 근본적인 사회변화가 불가능함을 역설한다. 페미니스트 인류학자인 김현미는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가 확인하는 진실은 인간이란 돌봄과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이고, 개인의 희생이 아닌 협력적 공공의 개입을 통해 돌봄이 이뤄질 때 가장 공평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생명과 생태계를 돌보는 노동의 가치가 여전히 다른 노동에 비해 저평가되고, 이런 노동을 여성이나 이주자의 일로 본질화한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하면서 “포스트 코로나의 대안적 사회 구성은 이제까지 들리지 않았던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아냄으로써만 가능하다. 이들의 경험과 희망이 직업의 재설계와 대안적 사회기획에 반영될 때, 인간과 동료 종의 공존, 인간 사이의 평등에 다가갈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돌봄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하라는 요구는 돌봄의 책임을 민주주의적으로 분배하자는 돌봄 민주주의나 ‘돌봄 뉴딜’에 대한 요구로 표출된다. 한국의 성차별적인 노동시장과 돌봄노동자의 현실을 고려할 때 돌봄의 성평등한 나눔과 여성노동의 지위 향상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또한 개개인뿐 아니라 사회가 지속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그림자노동’을 누가 수행하는가는 민주주의의 문제로서도 핵심적이다. 더구나 정부 주도의 ‘한국판 뉴딜’은 물론 탈성장의 전망에 입각하여 생태적·사회적 대전환을 제기하면서도 돌봄의 문제를 도외시하곤 하는 한국의 담론 현실에서, 코로나19 이후 사회의 전망에 돌봄의 민주화가 빠져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는 소중하다. 그럼에도 지금의 돌봄 민주주의나 돌봄 뉴딜 논의에서 아쉬운 점은 코로나19의 원인을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 자원에 대한 약탈 및 착취로 진단하면서도 과연 현재의 자본주의 생산체제하에서 돌봄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돌봄에 대한 가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질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여성 일자리의 중요성이나 성별 분업의 해체 필요성을 결론으로 한정 지으면서 돌봄의 민주화가 어떻게 체제전환 및 생태적 대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깊이 다루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돌봄은 그 자체로 새로운 자치적 공공성을 표방하는 공동체인 커먼즈의 본질적 일부이며, 동시에 커먼즈는 시장이나 국가를 통해서만은 실현될 수 없는 돌봄 가치 실현의 필수 조건이다. 돌봄은 삶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실천하도록 만들어주는 수단이며, 사회적 유대는 돌봄을 통해서 실감될 수 있다. 코로나19는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약화되어온 돌봄의 가치를 되살리고, 공공영역을 강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인간이 수행하는 일을 살펴보면 무엇을 생산하는 일보다, 보살피고, 양육하고,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이 더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고 평가받지 못한 돌봄노동 영역은 가사노동이나 사람 돌봄 노동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다. 돌봄에 대한 인식의 확장은 성장주의에 저항하는 가치로서 확장해줄 뿐 아니라, 돌봄의 민주화를 위한 운동에서도 새로운 연대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돌봄의 민주화가 대전환의 중요한 의제로서 제대로 힘을 얻고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돌봄의 다양한 측면을 실행하는 세력들과의 연대에 입각한 돌봄 커먼즈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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