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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커먼즈로서의 학술지식의 사회적 가치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박서현 


이 글은 학술논문·워킹페이퍼·연구보고서와 같은 학술지식이 어떤 의미에서 지식커먼즈인지를 검토하며 이 지식커먼즈의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확인한다. 이를 위해 먼저 학술지식이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확인하기로 하자.
  단적으로 말해서 학술지식은 연구자들의 사회적 협동의 산물이다. 어떤 학술지식도 어떤 한 연구자의 노력만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어떤 학술분야이든 학술지식이라면 기존 논의를 소화하고 기존 논의보다 한 발자국 나아간 논의를 제시하는 등 연구자 공동체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이는 학술지식이 선대 연구자들이 일군 결실에 기반하여 생산되고 전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학술지식은 공통의 부와도 같은 기존 지식에 기반하여 새로운 연구를 통해 이 공통의 부에 무언가를 덧붙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학술지식이 연구자들의 공동작업을 통해서 확장되고 심화되는 ‘공통의 부’인 것은 이 때문이다.

 

자료 : Shutterstock,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음

 
  공통의 부를 키워가는 공동연구의 구체적 사례로 동료평가를 들 수 있다. 동료평가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동료연구자가 학술지 게재 등을 위해 투고된 논문의 게재 가부를 결정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동료평가는 논문이 해당 분야의 기존 논의를 충실히 소화했는지를 확인하고 해당 분야의 성장과 발전에 논문이 보다 더 기여할 수 있도록 개선방안을 조언하는 것을, 이런 의미에서 학술지식의 생산에 협력하는 것, 학술지식의 생산을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료평가의 본령이 학술지식의 공동생산에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논문의 저자가 기존의 공통의 부에 새로운 무언가를 덧붙이는 측면이 있다고 분명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연구를 통해서 기존 지식이 확장되고 심화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분명한 것은 연구자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러한 덧붙임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분야이든 한 연구자가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고 있는 공통의 지반 즉 공통의 부가 새로운 연구의 기반이 된다. 그리고 동료평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공통의 부의 심화와 확장은 연구자들의 공동작업, 사회적 협력을 전제한다. 이런 의미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의미에서의 창조성은 아마도 학술연구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학술지식의 생산이 이와 같이 연구자들의 사회적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 학술지식이 지식커먼즈인 핵심적 이유다. 커먼즈를 이해하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지만 그 핵심에는 공통의 자원, 공통의 부를 공동사용·공동관리하는 커머너들의 사회적 협력을 통해서 새로운 공통의 부가 생산된다는 점이 놓여 있다. 물론 이러한 점 이외에도 이러한 공동생산을 규제하는 제도 혹은 규칙과 이러한 규칙을 자율적으로 준수하는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점 또한 커먼즈의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커먼즈의 요소에 비춰볼 때 학술지식은 분명 커먼즈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학술지식의 생산은 직접적인 공동작업과 동료평가 등의 간접적인 공동작업을 통해서 기존의 연구성과와 같은 공통의 부를 사용하여 새로운 공통의 부를 생산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생산에는 선행연구 검토와 같은 연구자들이 마땅히 따라야 하는 규칙들이 존재하며, 이 규칙들은 연구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규칙이다. 이와 같은 측면들이 학술지식을 지식커먼즈로 만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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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의할 것은 연구자들의 공동체는 예컨대 공동어장이나 공동목장과 같은 지역마을의 전통적 공동자원을 관리해온 공동체인 어촌계·산림계와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는 점이다. 공동자원을 관리해온 지역마을 공동체가 보통 폐쇄적 성격을 가지는 것과는 달리 연구자들의 공동체는 개방적 성격을 가진다. 이런 점에서 지식커먼즈로서의 학술지식은 공동어장·공동목장과 같은 전통적인 자연커먼즈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학술지식은 자원의 감소성 때문에 남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는 자연커먼즈와 달리 비감소적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오히려 학술지식은 더 많은 연구자들이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할수록 효용성이 더 커진다. 이런 점에서 공동체의 폐쇄성과 개방성 이외에도 자원의 감소성과 비감소성이 자연커먼즈와 지식커먼즈의 대표적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학술지식은 공통의 자원으로서 원칙적으로 비배제적이라는 성격을 가진다. 물론 학술논문과 같은 형태의 학술지식을 실질적으로 상품화하여 상업적으로 매매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즉 학술논문에 대한 인위적 희소성을 창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사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예컨대 일반 시민의 경우 소정 금액을 지불하고 학술논문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상용DB업체를 이용하여 해당 논문을 다운받을 수 있다. 나아가 연구자들은 소속 대학이 상용DB업체와 이용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논문들을 대학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연구자들 역시 오늘날 자유롭게 학술논문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학술지식에 대한 인위적 희소성은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창출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비감소적일 뿐 아니라 원칙적으로 비배제적인 학술지식이 현재 자유롭게 공유되지 못하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학술논문의 비감소성과 비배제성이 학술논문을 ‘경제학적’ 의미의 공공재로 만드는 이유라는 점이다. 물론 그것은 경제학적 의미의 공공재가 비감소성과 비배제성이라는 성격을 가지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추가적으로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은 학술지식을 지식커먼즈로 이해하는 것이 경제학적 의미의 공공재로 환원되지 않는, 학술지식의 독특한 성격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 것일까? 이제 이 문제를 검토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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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우리는 학술지식이 확장되고 심화되는 공통의 부라는 점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학술지식의 가치는 기존의 공통의 부에 무언가를 덧붙인다는 점에, 기존의 공통의 부의 확장과 심화를 가져온다는 점에, 확장되고 심화된 공통의 부가 또 다른 연구의 기반이 되어 다시금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원천이 된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학술지식의 가치는 그것이 기존의 공통의 부를 초과함으로써 기존의 공통의 부를 확장·심화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공동의 부를 구성한다는 데 있다. 생산된 지식에는 기존의 지식을 초과하는 무엇이 있다는 점, 이러한 초과가 새로운 연구의 기반이 됨으로써 새로운 지식의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학술지식이 우선적으로 가지는 가치인 것이다. 그리고 창조성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혁신성이라고 불리기로 했을 ‘초과’라는 이 가치가 전통적으로도 학술지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의할 것은 여기까지는 우리가 커먼즈로서의 학술지식의 가치를 그저 ‘형식적으로’ 검토해왔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 우리는 학술지식이 가지는 초과라는 가치를 그것의 내용에 대한 검토 없이 그저 확인해왔을 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초과의 ‘내용’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학술지식이란 본래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학술지식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학술지식이 지식커먼즈라는 것은 초과라는 학술지식의 가치에 이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우선적으로 학술지식은 인간과 사회, 자연과 예술 등에 대한 연구활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학술지식의 가치는 그것이 새로운 연구의 기반이 된다는 데 있는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학술지식의 가치는 무엇보다 더 그것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하여 인간과 사회, 자연과 예술 등에 대한 기존의 관념들을 문제시하고 이를 통해 연구자 자신과 다른 연구자들이 상기의 영역들의 제반 지식들을 다르게 보게 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른 봄과 다른 생각은 궁극적으로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침으로써 우리 사회의 보다 더 건강한 성장을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 학술지식이 추구하는 가치가 우리 사회의 보다 더 건강한 성장을 도모한다는 의미에서의 ‘공공성’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학술지식은 초과라는 가치 이외에도 공공성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가진다. 물론 학술지식의 공공성은 학술지식이 애초부터 가지고 있는 가치와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구자들의 공동작업 속에서 추구되는 가치, 새롭게 구성되는 가치, 변혁에 열려 있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학술지식의 공공성은 언제나 초과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서,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기존의 관념들에 대한 비판과 혁신 속에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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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하면, 학술지식이 비감소적·비배제적 공공재인 동시에 공공성을 가진다는 점, 즉 학술지식이 ‘공공성을 가지는 공공재’라는 점이 학술지식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학술지식이 가지는 커먼즈로서의 성격과 관련해서는 학술지식이 기존의 관념들을 문제시하고 새로운 봄과 새로운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보다 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초석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식커먼즈로서의 학술지식이 ‘공공성의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커먼즈론과 학술지식이 접목될 때 부각되는 면모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식커먼즈로서의 학술지식은 일종의 ‘열린 공공성을 가지는 공공재’이며, 이것이 학술지식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보다 더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학술지식이 이와 같이 열린 공공성을 가지는 공공재라는 점이 학술지식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오픈액세스의 실천과 함께 학술지식의 생산을 보다 더 확대하고 심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창안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전술했듯이 시민들이 학술지식을 비용을 지불하고서 다운받아본다는 것은 공공재로서의 학술지식이 실질적으로는 사유재로서 매매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공공기관의 연구지원을 받은 학술지식 즉 세금이 지원된 학술지식만이 공공재인 것이 아니라 학술지식은 본래 공공성을 가지는 공공재다. 중요한 것은 공공재인 학술지식을 인위적으로 희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학술연구를 통해서 공공성의 새로운 지평을 구성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역으로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학술지식이 자유롭게 공유될 경우 새로운 연구가 보다 더 확대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연구의 질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학술지식이 공공성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학술지식을 보다 더 자유롭게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오픈액세스는 이러한 방안의 일환으로서 중요하지만 오픈액세스로 충분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술지식 생산의 확대와 심화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에는 무엇이 있을까?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젊은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자 주택, 보편적 기본소득의 일환으로 모색되는 연구자 기본소득 등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색이 학술지식을 지식커먼즈로서 이해하는 작업의 연장선에서 제기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 이유는 공동생산과 초과를 강조하는 지식커먼즈 개념이 학술지식의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우리 사회의 보다 더 건강한 성장과 관련하여 묻게 만들기 때문이다. 학술지식을 지식커먼즈로 이해할 때 드러나게 되는 측면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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