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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번영을 이룬 것은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지붕이 낮은 청계천 공구상가들 가운데 휘갈긴 글씨가 우뚝 섰다. 1969년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자필편지는 50년의 세월이 지나 붉은 벽돌 건물에 새겨졌다. 부드럽지만 힘 있게 휘갈긴 글씨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청계천 상가들을 굽어보며 사랑, 연대, 행동이라는 전태일의 가치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노동절을 하루 앞둔 지난 30일, 청계천 수표교 앞에 전태일 기념관이 정식 개관했다. 과거 우리의 노동을 돌아보는 전시 외에도 현재의 노동, 나아가 미래의 노동을 이야기하는 공유공간 ‘노동허브’도 함께 개관했다. “오직 고삐에 매인 금수처럼 주린 창자를 채우기 위하여 끌려다니고 있는”노동자들을 대변했던 전태일에게 우리는 이제 어떤 노동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노동허브는 그 이야기를 할 준비를 마쳐가고 있었다.

 

 

  • 과거의 노동을 넘어 오늘, 내일의 노동으로

“과거의 노동을 넘어 현재의 노동을 이야기하는 징검다리” 노동허브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동의하며 전태일기념관 노동허브 강재영 사무관은 입을 열었다. 총 6층으로 되어 있는 전태일 기념관은 2층엔 전시실, 3층 공연장, 4층 노동허브, 5층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입주해있다.

2층 전시실에는 “전태일의 꿈, 그리고”의 주제로 전태일의 삶 전반을 다루는 상설전시가 진행 중이다. 전태일의 어린 시절부터 청계천 봉제노동자의 생활공간을 다루며 과거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 라는 글씨가 아로새겨진 전시실에는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을 그리는 메시지가 가득했다.

1970년대 노동현장을 경험하지 못한 지금의 세대에게 “전태일의 꿈, 그리고” 전시는 근로조건이라는 막연한 역사 속의 공간에 대해 세대를 뛰어넘는 경험의 공유 역시 제공하고 있었다. “1개 층을 위 아래 둘로 나눈 작업장, 봉제노동자들은 허리를 펴기도 어려웠다.” 전시실에 적힌 노동자의 근로조건은 지금의 노동조건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작업장 모형을 통해 구현되어 있었다. 기자가 직접 앉아보니 서서 허리를 펴지 못할 뿐 아니라 재봉틀 앞에 앉아서도 허리를 굽힌 채로 작업할 수 밖에 없었다. 전태일이 산화한 청계천과 동대문 근처에는 고층 건물의 의류상가가 들어섰다. 전태일이 분신한 장소라는 작은 동판 주변에는 여전히 원단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가들이 들어서있다. 더 이상 1970년대의 열악한 노동현장을 상상하기 어려운 현재 세대에게 상설전시가 메세지는 분명했다. “과거의 노동 현장을 넘어 오늘 내일의 노동현장으로, 노동의 경험을 공유하자. 그리고 내일의 노동을 이야기하자.”




<나무에 걸린 메시지>



상설전시의 또 다른 테마는 ‘모범업체: 태일피복’이다. 태일피복은 전태일이 생전에 적었던 근로조건을 현실화하여 구상한 가상의 업체다. 주48시간 노동시간, 밝은 형광등과 환풍기가 있는 근무환경, 8000원(1970년 기준)의 월급. 짜장면이 100원이던 시절 8000원, 현재가치로 48만원 정도의 임금을 요구하던 전태일의 바람은 과거의 노동이 오늘의 노동에 던지는 메시지다.
 

 

  • 오늘의 노동을 고민하는 노동허브의 공간 공유

전시관의 한계단 위, 4층에 위치한 노동허브는 오늘의 노동이 던질 답을 공유를 통해 답할 노동허브로 꾸며졌다. 노동허브는 작고 아직은 힘 없는 노동자와 함께하고자 했던 전태일 정신을 이어받아 저렴한 임대료, 적절한 위치로 오늘의 노동을 공유한다.


<공간:사무실>

 

서울에 위치한 신생노동단체, 노동조합 미가입 단체 혹은 커뮤니티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노동허브는 총 5개의 사무공간과 세미나실, 강의공간으로 구성돼있다. 제곱미터당 7000원으로 가장 넓은 공간은 월 15만2390원, 가장 작은 공간은 월 12만6630원의 사용료로 입주할 수 있다. 보증금은 50만원이다. 1km 거리 종로 1가의 르메이르 종로1가 타운 오피스텔이 제곱미터당 22950원인 것에 비하면 3분의 1수준, 보증금은 60분의 1수준이다. 운영비 수준의 낮은 임대료는 노동허브의 공간운영이 노동의 개선을 고민하는 단체들과의 공간 공유 개념 위에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조합 미가입 노동자들과의 연계가 쉬운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 역시 전태일 정신의 발로다. 전태일 기념관이 위치한 수표로에는 공예, 전기, 기계부품, 아크릴 등 제조업 부품을 다루는 영세상가들이 위치한다.노동조합이 제대로 운영되기 어려운 영세노동자들이 찾기 쉬운 위치인 것이다. 고용노동부 2015년 자료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노조조합원 비율은 2.5%로 매우 낮다. 노조에 가입하기 어려운 영세사업자라면 누구나 가까운 노동허브를 찾아 어려움을 공유하고 함께 답을 찾아갈 수 있다.


<표-고용노동부>


 

  • 평등한 협의, 공유로 함께 노동을 이야기하다

향후 노동관련 강의나 강연 계획을 묻는 질문에 강재영 사무관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어느 단체가 이끌어가는 행사보다는 동등한 위치에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네트워킹의 장이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사랑, 연대’의 전태일 정신을 노동허브의 네트워킹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5개의 사무실 가운데 위치한 탁 트인 모임공간은 연대와 평등의 노동허브 정신을 보여줄 공유의 공간을 상징한다. 중심의 모임공간을 사무실과 세미나실이 둘러싸고 있는 개방형 구조는 노동허브에 입주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만남과 공유를 유도한다. 또한, 사무실 뿐 아니라 모든 공간의 벽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어 서로가 고민하는 노동이슈를 고민하고 함께 풀어나가자는 공간의 의미가 담겨있다.

 

  • 공유가치 극대화할 프로그램, 노동권익위원회와의 연계도 고민해야

노동 이슈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공간은 갖춰져 있으나, 보다 적극적으로 공유를 이끌 수 있는 프로그램은 노동허브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강재영 사무관은 ‘함께’와 ‘평등’을 이야기했지만 노동의 분야가 다양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협업하는 수준의 생산적인 공유를 이끌어내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직 부족해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노동의 문제는 다양한 법, 제도와 연관되어 있고 노동자 뿐 아니라 기업, 소비자와의 열린 소통이 필요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노무법인 등의 노동법 강의나 사용자 단체와의 소통 창구를 마련하는 역할이 핵심적이다. 공유 공간 제공을 넘어 다양한 외부인사의 교육, 소통 프로그램을 노동허브가 시행하는 것 역시 기대되는 이유다. 강재영 사무관이 노동허브 입주기관들이 주1회, 월1회 수준의 모임을 갖게 할 예정이라고 언급한 부분은 그래서 희망적이다. 입주단체를 모집하는 등 사업 초기 단계에 있는 만큼, 다양한 소통과 교육의 프로그램에 대한 설계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존중사회는 전태일 마음으로.”. 전태일 기념관 6층의 열린 실외공간 옆에는 전태일 정신을 수놓은 굴뚝이 설치되어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전태일의 시대에 굴뚝이 허리도 펼 수 없는 피복노동자의 눈물과 피를 태우는 잿빛 연기를 뿜었다. 이제는 역사, 경험, 공간의 공유로 사랑과 평등, 연대의 푸른 연기가 굴뚝에 피어나길 기대해본다.

 

 

*전태일기념관 노동허브가 2019 입주단체를 모집합니다.

모집대상: 서울을 기반으로 1년 이상 노동과 관련된 공익적인 활동을 펼치는 단체중 공간이 필요하고, 활동계획이 있는 단체

입주기간: 2019.07.01~2020.06.30 (1회에 한하여 6개월 연장 가능)

접수방법: 전태일기념관 홈페이지(https://www.taeil.org)공고문 내 첨부서류 다운로드 후 이메일(taeil@taeil.org)로 제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105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TEL:02-318-0904

홈페이지: https://www.taeil.org

이메일: taeil@taei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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