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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의 상상력과 서정시의 귀환
_2020 서울혁신주간 기조 세션 온라인 참관기


나는 도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난 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도시는 내게 삶의 터전이 아니었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는 대합실과 같은 곳이었다. 내가 연일 도시적 삶에 지쳐 어깨가 축 늘어져 있을 때, 시 쓰는 후배가 결정타를 날렸다. “도시에서 서정시를 쓰는 것이 가능한가요?”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도시는 악의 산실이자, 만악(萬惡)의 번화가였다. 이런 도시에서 서정시라니.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불가능하다고 이미 판정이 나지 않았는가. 그래, 한두 가지 요건이 갖춰지면 바로 짐을 싸리라.
하지만 도시 탈출은 성사되지 않았다. 물려받은 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노후를 대비해 재테크를 한 것도 아니었다. 하늘에서 황금이 떨어지지 않는 한, 나는 도시를 떠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용기가 부족했다. 그때부터 도시를 다시 보았다. 탈도시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도시를 ‘시골’로 만들자. 도시를 내가 살고 싶은 마을로 탈바꿈시키자. 이런 청사진을 만지작거려온 내게 서울시가 주최한 2020 서울혁신주간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리 만무했다. 특히 ‘기후비상사태와 전환을 위한 경제’를 주제로 내세운 기조 세션은 내가 붙잡고 있는 화두와 접점이 많았다.
   

도시를 시골로 만들자는 기획은 말이 쉽지, 막상 실행 단계로 접어들라치면 갑자기 ‘장벽’이 나타난다. 그중 가장 거대한 장벽이 경제 논리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으면, 그리고 이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 저 ‘돈의 마력’이 우리 모두의 의식 저 아래 똬리를 틀고 있다. 경제적 공포가 내면화한 것이다. ‘돈이 없으면 죽는다’는 강박증이 전환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 가운데 하나다. 개발과 성장이 미래의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라는 믿음이 집단 무의식처럼 작동하고 있다.  
기조 세션에 관심을 갖게 된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기후비상사태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 아니었다면 기후 이슈가 첨예하게 드러났을 터인데 ‘마스크’가 다른 중대 사안을 밀쳐냈다. 신종  감염병이 가벼운 사안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전례 없는 사태는 하루빨리 종결돼야 한다. 문제는 신종 바이러스를 퇴치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종 감염병은 여러 위기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복합위기의 중핵이 기후위기라고 생각한다. 모든 지구적 난제의 원인이 기후로 수렴되고, 모든 위기가 기후로부터 확장된다. 이번 팬데믹은 우리가 인류의 이름으로 치러야 할 처음이자 마지막 시험인지도 모른다. 이 시험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모든 차이와 경계를 넘어 인류 차원에서 코로나 사태를 종식시킨다면, 그때 우리는 장기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희망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서울혁신주간 기조 세션은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도넛경제를 필두로 순환경제, 사회적 경제 그리고 중국의 새로운 도전. 이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전환, 즉 기존 산업문명(신자유주의) 체제를 뛰어넘는 경제 차원의 전환이다. 먼저, 도넛경제학은 지구의 생태계와 산업 문명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새로운 관점이자 실행 로드맵이다. 발제를 맡은 케이트 레이워스(도넛경제학 액션랩 공동창설자)에 따르면, 도넛의 ‘안쪽 구멍’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는 디스토피아다. 도넛 바깥은 지구의 생태 용량을 표시한다. 우리는 도넛의 안쪽이나 바깥쪽이 아니라 도넛 위에서 살아가야 한다(사소해 보이지만, 도넛경제학은 네이밍의 승리로 보인다. ‘바퀴’ 경제학이라고 했다면 아마 설득력이 떨어졌을 것이다. 도넛이 주는 이미지는 얼마나 친숙한가. 내러티브와 소통을 통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전환 설계는 성공하기 힘들다). 발제자 레이어스는 도넛경제학이 국가와 세계는 물론 기업과 개인의 삶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시가 도넛이라면,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도시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도넛’이다. 이런 도넛 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 삶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지구 생태계와 조화와 균형을 이뤄내야 한다. 이것이 전환의 궁극 목표일 것이다.


순환경제가 추구하는 미래 역시 도넛 경제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발제자 나닌 파주넨(씨트라)은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주범이 건설업이라고 지적한다. 건설 부문이 천연자원의 50%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건설업이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 ‘탄소 중립’을 실현하는 동시에 제품 개발이나 신소재 분야에서도 재활용과 재사용, 즉 ‘사용 후’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파주넨은 교육, 예술, 비즈니스, 식품 분야에서 순환경제가 뿌리내리고 있는 핀란드 사례를 소개하면서 미래의 모든 전문가는 순환경제 전문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산업 문명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가 ‘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린 것이다. 생태계의 제일 원칙이 순환이다. 모든 생명은 순환하지 않으면 공멸한다. 순환이라는 ‘오래된 미래’는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는 순환이 생태적 세계관의 ‘심장’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왔다.
지안루카 살바토리(폰테지오네이탈리아소셜 사무총장)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배경으로 사회적 경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에 의하면, 신종 바이러스의 지구적 확산이 세 가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기업의 역할이 축소되는 대신 국가의 역할이 증대됐다. 둘째, 이에 따라 영업 정지, 등교 제한, 사회적 약자 돌봄 등 국가 공권력이 전면화했다. 셋째, 지역사회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재난에 닥치자 시민들이 연대와 봉사, 나눔을 통해 공공의 이익을 추구했다. 살바토리는 “코로나 재난이 사회적 경제가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 명의 천재가 아니라 팀웤, 즉 사회가 경제 발전의 주체로 떠오르리라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재난은 기회이기도 하다. 레베카 솔닛의 탐사보도에 따르면, 대부분의 위정자들이 재난을 폭동의 계기로 인식하는 반면, 건강한 시민사회는 재난을 유토피아가 도래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마지막으로 원테쥔(중국 인민대 교수)의 발표가 이어졌다. 중국의 도시-농촌 융화전략. 중국이 지난 세기말 국가 발전전략을 ‘지속가능성’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고 2007년부터는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 쪽으로 선회했다는 사실은 제법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국 농촌에서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현재 중국 전체 인구 14억 인구 중 60%에 달하는 8억 4천만 명이 도시에 거주한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급격한 도시화는 생태 환경 파괴, 부동산 가격 폭등, 양극화 심화 등 적지 않은 폐해를 낳았다. 도시화가 해결책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시화는 서방 세계의 도전에 대한 효과적 응전 전략도 아니었다. 중국은 생태문명으로 가는 길 중 하나가 ‘3농(농민, 농촌, 농업) 혁신’이라고 보았다. 농촌의 변화는 대도시에도 영향을 끼쳤다.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중산층의 귀농, 귀촌도 늘어났다. 청년들이 농촌으로 향하고 농촌에 대한 정책 지원과 도시인들의 투자도 활발해졌다. 이 같은 움직임이 도시와 농촌 간 통합을 앞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진 온라인 토론에서도 의미 있는 논의가 오갔다. 이탈리아에서는 사회적 경제가 전체 고용의 1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의료보건, 교육, 농업 분야에서 열 명 중 한 명이 사회적 기업에 몸담고 있다. 이탈리아의 수천 개 텅 빈 시골 마을을 되살리는 것도 사회적 경제였다. 지안루카 살바토리는 “이탈리아의 회복력은 사회적 경제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원테진은 “중국 정부의 농촌 재건 정책은 포퓰리즘이 아니다. 중국의 신경제”라고 말했다. 중국은 산업문명 대신 생태문명을 통해, 세계화 대신 현지화를 통해 ‘중화문명의 위대한 부흥’을 도모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가 여전히 발아 상태에 있고, 농업에 대한 인식이 ‘산업 논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새삼 대비됐다.

지구 자원은 무한하고, 경제 주체는 합리적이며, 시장은 자기 조정능력이 있다고 믿는, 그리하여 국가와 사회의 개입을 적극 저지하는 주류 경제학은 ‘두 얼굴’을 가졌다. 기존 경제학은 산업문명을 절정으로 밀어 올렸지만, 동시에 인류와 지구를 파국으로 몰아넣었다. 인류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현재 체제와 가치를 고수하며 공멸할 것인가. 도넛경제로 대표되는 새로운 경제학은 전환을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가자고 주창한다. 나는 이 대안의 상상력, 지금과 다른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전환 설계를 적극 지지하고 응원한다. 문명사 차원에서 전면적 전환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기조 세션이 제기한 문제의식과 지향점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내 의견을 덧붙이고자 한다. 경제는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찍이 칼 폴라니가 지적했듯이 경제는 사회의 상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보다 사회가 먼저다. 경제보다 사회가 더 커야 한다. 그런데 사회는 무엇이 움직이는가. 정치다. 호세 무히카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지금 인류사회가 직면한 진짜 위기는 환경위기가 아니라 정치의 위기이다.” 그렇다. 현실정치, 권력 쟁취를 지상 목표로 삼는 현실정치가 만악의 근원이다. 정치가 정치다웠다면, 국가와 기업이, 시민사회가 제 역할을 다했다면 코로나 팬데믹은 물론 기후비상사태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경제가 아니고 정치다. 경제이기 이전에 정치다. 그렇다면 전환의 첫걸음은 정치에서 떼어야 한다. 이때의 정치는 ‘자기 정치’다.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반한 삶의 정치, 생활 정치. 현실정치의 난맥상을 혁신하는 자기 정치는 내가 나를 표현할 때 가시화된다.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동시에 책임을 다할 때 나는 시민이다. 이런 시민이 목소리를 낼 때 현실정치는 설 자리를 잃는다.  시민은 ‘영혼 없는 소비자’가 아니다. 경제적 공포에 시달리는 ‘돈의 노예’가 아니다. 우리가 주권자 시민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순환경제, 사회적 경제가 뿌리내릴 것이다. 이 새로운 시민은 생태적 감수성을 우선하면서 도넛 경제가 지구 전체로 확장되도록 공감하고 연대할 것이다.
기후비상사태 극복을 위한 전환이 시작되는 장소는 다름 아닌 우리의 ‘마음’이다. 아니, 그 역도 성립한다. 사회적 경제와 같은 대안의 상상력이 시민의 주체적 각성을 촉진해야 한다. 깨어난 시민이 모여, ‘삶의 정치’가 한데 모여 전환의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우리 마음속에서 활발해질 때 도시 또한 토착 공동체, 비근대 공동사회 못지않은 ‘안전하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마을’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때 도시는 다시 서정시를 노래할 것이다. 사회는 안전하고, 시민은 안정되고, 도시는 아름답다고. 그리하여 지구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고.  
 

 
글쓴이: 이문재
시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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