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려 퍼주는 아티스트 – 어슬렁

혹시 사진이나 그림 아래에 삽입된 Copyright ⓒ 라는 표시를 본 적 있으신가요? 인터넷에서 정보가 흘러넘치는 요즘, 저작권 문제로 함부로 누군가의 창작물을 옮기거나 변형하는 것이 위험한 것임은 누구나 알고 있죠. 그런데 CCL(Creative Commons License)이라는 표시를 달아 자신이 그린 그림을 마음껏 퍼가 변형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상업적인 것에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아티스트가 있습니다. 자유롭게 서로 영감을 받으며, 새로운 창작이 끊임 없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그녀가 꿈꾸는 모습입니다.

 

“이 순간에도 내 그림이 네트워크를 타고 돌아다니며 어디선가 또 다른 창작물로 거듭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뿌듯하다.”

 

어슬렁1(사진 설명: 체코 프라하에서 그린 어슬렁의 여행 드로잉. CC BY © 이미영)

 

어슬렁(이미영), 콘텐츠 공유 아티스트

 

– 콘텐츠 공유 아티스트가 된 계기가 무엇인가?

 

처음부터 이렇게 아티스트가 될 줄은 몰랐다. 그전까지 했던 일은 ‘CCL(Creative Commons License)을 보급하는 비영리단체 ‘CC코리아’에서 활동했다. CCL이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라는 뜻으로, 저작물에 이용 허락 표시를 미리 달아 공개하고, 이걸 공유하고 활용해 또 다른 창작물로 만들자는 것이다. 창작물에 되도록 이용 허락 표시를 달도록 알리고, 이런 창작물을 널리 퍼뜨리고, 다른 이들이 이를 배경으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고, 다시 이 창작물이 이용 허락 표시를 달고 널리 퍼지게 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남의 창작물을 공유하거나 가져다 쓰는 이는 많아도, 직접 창작 활동을 하는 이는 귀하다 보니 창작물 자체를 확보하기 어려웠던 게 고민이었다. 창작을 많이 하면 해결된다고 생각해서 직접 하기로 했다.

 

어슬렁 2(사진 설명: 체코 프라하에서 그린 어슬렁의 여행 드로잉. CC BY © 이미영)

 

-컨텐츠 공유를 시작하게 된 ‘어슬렁의 여행드로잉북’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동유럽과 지중해 지역을 여행하며 본 것들을 담아 책으로 내겠다는 프로젝트로 시작하였다. 여행경비를 모아야 했기 때문에 ‘크라우드 펀딩’, 즉 우리말로 품앗이 후원을 도와주는 텀블벅(https://tumblbug.com)에 ‘어슬렁의 여행드로잉북‘ 프로젝트를 등록했다. 내 프로젝트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면,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금액별로 자유롭게 후원한다. 후원 받은 돈은 돌려주는 대신, 책 또는 직접 그린 엽서를 주거나 책에 후원자 이름을 넣어 돈이 아닌 다른 ‘가치’로 되갚는다. 동유럽과 지중해를 30일 동안 돌아보는 것으로 110만 원을 목표 금액으로 정했는데 뜻밖에도 모두 47명의 후원자를 통해 129만 9천 원을 모았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내 계획을 믿고 선뜻 지갑을 여는 것은 낯설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어슬렁의 여행드로잉북-동유럽과 지중해’ 책을 냈다. 책 200권을 찍어 후원자에게 50여 권을 보내고, 지인들에게 50권 정도를 팔았다. 나머지 100여 권은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소규모 책방 10여 곳에 걸려있다.

 

어슬렁3(사진 설명: 그리스에서 그린 어슬렁의 여행 드로잉. CC BY © 이미영)

 

– 출판된 책을 일부 판매하였다고 했는데, 그럼 공유는 어떻게 한건가?

 

원화를 사진공유 서비스 플리커(https://flickr.com)에 올리고, 책은 PDF 파일로 무료로 공개했다. 책과 그림엔 조건 없이 가져다 쓰되, 출처만 밝혀달라는 ‘저작자 표시’(BY)의 CCL 조건을 내걸었다. 그린 이가 ‘어슬렁’이란 점만 밝히면, 그림을 그냥 가져다 쓰거나 일부만 잘라 써도 되고 심지어 다른 이에게 되팔아도 상관없다. 책은 필요한 만큼만 소량으로 제작하여 앞서 말한 것처럼 후원자들에게 선물하거나 일부 판매하였다.

 

– 공유한 창작물을 누군가 이용한다는 느낌은 어떤가?

 

어떤 뮤지컬을 기획하던 곳에서 뮤지컬 포스터에 <동유럽과 지중해>의 그림을 넣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내 허락받지 않아도 출처만 밝히고 쓰라고 표시해뒀는데, 전화해서 재차 확인하고 허락 받으려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뮤지컬 포스터 배경에 내 그림이 깔렸다. 이 순간에도 내 그림이 네트워크를 타고 돌아다니며 어디선가 또 다른 창작물로 거듭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뿌듯하다.

 

– 그림이 아닌 다른 창작물도 공유할 계획이 있나?

 

그림은 첫 시도였을 뿐이다. 두 번째 실험으로 ‘작곡’에 도전을 시작했다. 공부에 접어들어 강좌를 신청하고 같은 팀끼리 밴드도 결성했다. 곧 ‘오후에 비상구의 기타리스트 어슬렁’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개인이 일상에서 소소하게 창작을 해보는 실험도 진행 중이다. ‘컴 먼데이 책마실’ 프로젝트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는데, 각자 우리 동네 사진 찍기, 독후감 두 줄 쓰기와 같은 창작 목표를 정하고 그걸 실천하는 거다. 원대한 목표를 정하고 긴 호흡으로 열심히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소하지만 명료한 목표를 정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실천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아닌가?

 

| 어슬렁의 여행드로잉 |
http://traveldrawing.cc/
twitter @netstrolling

 

*이 글은 블로터닷넷의 이희욱 님의 기사 ‘그림 그려 퍼주는 아티스트(http://www.bloter.net/archives/106430)’를 인터뷰 형식으로 가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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